소련판 세월호 사건에 감춰진 한 남자의 놀라운 비밀

1976년 소련 예레반 댐 근처에서 버스가 다리를 건너다 강 아래로 전복 당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신고를 받고 구조 대원들이 출동했지만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엉망인 장비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던 것이었죠. 이때 머뭇거리는 구조대원을 대신해 물속에 뛰어든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1976년 천부적인 실력으로 수영 천재로 불리던 '샤바르시 카라페트얀'은 세계 기록 11개를 세우며, 차기 올림픽의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혔습니다. 월드 챔피언십 17회 우승, 유럽 챔피언십 13회 우승, USSR 챔피언십 7회 우승을 기록한 그는 적수가 없을 정도의 실력을 선보이며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죠.


1976년 9월 16일  차기 올림픽의 유력한 우승후보였던 그는 평소처럼 아르메니아 에레반 지역에 있는 댐을 따라 조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의 눈앞에서 놀랄만한 광경이 펼쳐집니다. 승객 92명을 태운 버스가 중심을 잃고 물속으로 빠져 버린 것이죠.


구조대원들이 왔지만 그들은 넋을 놓은 채 구조작업을 하지 않았습니다. 장비도 엉망이였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 하고 있었죠. 그러자 '샤바르시 카라페트얀'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직접 물속으로 뛰어들어 승객을 구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무려 1시간동안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속으로 30번이 넘는 다이빙을 했습니다. 그리고 92여 명의 승객 중 무려 30명 이상의 승객을 혼자 구조해 내는데 성공하죠.


남을 돕기 위한 행동이었지만 그의 용기는 혹독한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구조 작업 중 유리 파편과 날카로운 것들에 심하게 찔려 양쪽 폐를 다치게 된 것이죠.


물속으로 나오자마자 정신을 잃은 채 쓰러진 샤바르시 카라페트얀은 이후 46일 만에 잠에서 깨어나게 됩니다. 하지만 양쪽 폐 모두 손상되어 패혈증세가 왔고 더 이상 수영을 할 수 없다는 진단을 받게 되죠.


더욱 충격적인 것은 당시 사건 담당 검사가 이 사건에 대해 절대 발성하지 말아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은 만큼 여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었죠. 결국 샤바르시 카라페트얀의 영웅적 행동은 보도되지 않았고 구조대가 사람들을 구했다는 기사만 보도됐습니다.


이후 샤바르시 카라페트얀은 수영을 포기하지 않은 채 수영 선수로 재기를 노리며 재활을 했지만 후유증으로 이전과 같은 성적은 거둘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점점 사람들에게 잊혀 갔습니다. 그로부터 2년 후 당시 사건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낀 검사는 진실을 폭로하게 됩니다. 진실이 알려지자 그의 영웅적 구조 활동에 대해 언론사들은 앞다투어 보도했고 국민들은 그를 영웅으로 추대했죠.


샤바르시 카라페트얀은 더 이상 자신의 꿈이었던 수영선수로 활동할 수 없지만 1993년부터 모스크바에서 구두 수선점을 운영하며 평온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2013년 10월 그가 소치 올림픽 성화 봉송자로 등장하자 전국 각지에서 그를 향한 격려와 감사의 편지들이 쏟아졌죠.


이 사건을 보면 3년 전 일어난 세월호 사건이 많이 생각 나곤 합니다. 만약 세월호 선장과 선원 중 단 한 명이라도 제대로 구조 활동을 했다면 더욱 많은 아이들을 살릴 수 있지는 않았을까라는 안타까운 마음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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